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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動画の視聴は次をクリック(http://www.youtube.com/watch?v=y30QVpVDfZU&feature=player_profilepage)
2013/08/25 20:03 2013/08/2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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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検察庁前に掲げられている陳載仙罷免要求(2013年8月23日)
2013/08/25 18:43 2013/08/25 18:43

統一は‘英雄時代'だ。韓民族皆が英雄にならねばならない時代だ。

                                                                   趙甲済

総論:大韓民国主導の自由統一は、民族史の異端勢力である北韓政権を解体し、北韓同胞を解放することで、真実・正義・自由に基づいた先進強大国を完成して世界平和に寄与することだ。過去100年あまりに亘っての、開化- 独立運動-建国-護国-産業化-民主化の過程を完成して、烈士たちの労苦に報いること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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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英雄時代を開こう。歴史的に分裂された国が一つになる過程は、最も劇的で、多くの英雄たちを輩出する時代だ。統一は‘英雄時代'だ。韓民族皆が英雄にならねばならない時代だ。

1-1.統一強大国にふさわしい国民の意識改革が必要だ。植民地根性、奴隷根性、事大主義、被支配の心理を捨てて、主人意識、一流市民、そして指導者の徳目を備える。

2.統一は根源的な解決策で、活路だ。韓国が抱えている解決し難い問題- 理念・地域・階層・世代の葛藤を解消するためには統一しなければならない。北核、従北、経済沈滞、過剰福祉、国民規律の緩みなどの問題らも統一が答えだ。統一は、諸問題を立体的に、統合的に解決する方式だ。

3.‘統一韓国'はドイツ並みになる。7500万人の人口、22万平方キロの経済・軍事・政治強国として、世界5大強国、つまり、ドイツ並みの強国になる。

4.統一韓国は、北東アジアの繁栄の安全弁だ。韓・日・中三国のGDPを合わせると、今も米国や欧州連合を抜くが、北韓政権という癌と核兵器を除去した統一後は、平和の中での繁栄が続く。

5.統一韓国はすべての国に役立つ。歴史的に統一された韓半島は侵略したことがない。韓国が弱くなるか分裂されると周辺国が戦争に巻き込まれる。

6.統一は憲法の命令だ。韓半島全体を民主共和国にするのだ。

7.統一の3原則は、民族自决主義、自由民主主義、平和と繁栄だ。

8.統一のための力は、韓国人の熱望、北韓住民の蜂起、そして韓米同から組織される。

9.‘平和協定’は、韓半島の分断固着をもたらす危険性があるため、気をつけねばならない。韓米同盟は統一後も維持せねばならない。

10.統一追求で従北勢力を弱体化できる。自由陣営は統一の主体勢力であり、従北は反統一・分断固着の守旧勢力だ。

11.韓国統一の歴史的なモデルは、新羅の三国統一とドイツの統一だ。

12.統一は楽しいことだ。自由陣営は統一談論を通じて歴史の主導権を握るべきだ。北韓の変化(北韓政権の弱体化と、北韓住民の強化)を誘うため、韓国の強みであるお金と技術を利用せねばならない。

13.ところが、統一は切迫したものだ。自由統一をしないと、韓国は数々の葛藤によってエジプトのように内部爆発するかも知れない。統一は、われわれが生きるための活路でもある。

www.chogabje.com 2013-08-16 08:12

2013/08/19 23:35 2013/08/19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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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15K6機が8月2日大邱基地を離陸して空中給油を受けながら7,223キロを飛行、アラスカのアイソン基地に着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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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1 21:37 2013/08/11 21:37

모네 등 인상파 화가들을 통하여 널리 알려진 노르망디 경치

趙甲濟

 노르망디는 194466일의 上陸作戦으로 세계에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다. 1066년 노르망디公 윌리엄의 英国 上陸 및 征服도 영국과 프랑스뿐 아니라 유렵의 역사를 바꾼 사건이다. 윌리엄이 이끄는 노르만 군대(1만 명)는 노르망디를 출발, 영국을 정복했고, 연합군은 영국을 출발, 노르망디에 상륙, 나치 독일을 무너뜨린다. 세계사를 바꾼 두 상륙작전의 무대인 노르망디는 면적이 3672평방킬로미터, 인구는 약345만 명이다. 野山조차 보이지 않는 대평원이다. 英佛해협으로 들어가는 세느 강 流域이라 농토와 목장이 많다.

 노르망디는 문화와 예술과 영화를 통하여도 많이 알려져 있다. 몽셍미셀 要塞, ‘셀부르의 우산이란 영화의 무대가 된 셀부르 항구,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나오는 오마하 비치, 유명 배우들이 총출동한 ' 롱기스트 데이',  ‘남과 여란 영화의 무대인 도빌, 그리고 소설가 모파상과 프로벨, 印象派의 元祖 클라우드 모네, ‘미국의 민주주의를 쓴 알렉스 드 토크빌 등이 이곳 출신이다.

 나의 노르망디 紀行은 파리의 마르모땅 모네 美術館에서 시작되었다. 이 미술관은 1932년에 폴 마르모땅이란 역사연구가가 자신의 저택과 르네상스 시대의 미술품을 기증하여 설립되었다. 1971년에는 모네의 아들이 아버지의 작품 65점을 미술관에 기증하였다. 1950년엔 Donop de Monchy 부인이 아버지의 수집품을 기증하였는데 모네의 해뜨는 印象’(Impression-Sunrise)이 포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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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63x48cm의 캔버스에 그려진 해뜨는 印象앞의 의자에 앉아 한참 바라보았다. 모네가 느꼈던 그 인상을 느끼기 위하여. ‘해뜨는 印象은 世界 美術史의 흐름을 바꾼 그림이다. 모네는 이 그림을 르아브르 항구(세느 강이 노르망디 평원을 거쳐서 도버 해협으로 들어가는 하구)에서 창문을 통하여 그렸다. 1872년이었다. 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모네가 받은 日出 港口의 風景 印象을 그렸다. 햇볕과 이미지를 重視하니 자세한 묘사는 생략되었다. 모네는 이 작품을 전시회에 출품할 때는 제목을 붙이지 않았다. 주최 측에서 제목을 요구하여 ‘‘해뜨는 印象이라고 作名하였다. 1회 인상파 전시회가 1874년에 열렸다. 이 전시회를 본 Louis Leroy라는 평론가는 혹평을 하면서 모네의 그림 제목을 따서 인상파들의 전시회라고 썼다. 이때부터 인상파라는 말이 통용된다.

 모네는 畵幅에 담는 경치는 내가 받는 인상 이외엔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였다. 객관적 實體로서의 경치가 아니라 화가가 느끼는 주관적 인상으로서의 경치인 것이다. 이게 인상파 화가들이 제기한 미술의 새로운 觀點이었다. 인상파 화가들은 햇볕, 움직임, 시간의 변화를 그림에 담으려 했다. 인상파의 등장은 사진의 발명과 관련이 있다. 사물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점에서 그림은 사진을 당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실대로 그린다는 게 의미가 약해진다. 사진이 따라올 수 없는 그림은 무엇인가? 화가의 주관적 視覺, 즉 인상이다.

 인상파의 그림을 평론가들은 스케치 수준의 미완성 작품, '벽보보다 나을 것이 없다'는 식으로 비판하였지만, 그림에 대한 새로운 관점은 곧 야수파, 입체파 등 20세기의 새로운 畵風으로 발전해갔다.

 모네의 '해뜨는 인상'1985년에 이곳 마르모땅 미술관에서 도난당하였다가 5년 뒤에 회수되었고 이듬해부터 다시 전시되고 있다. 모네는 노르망디의 지베르니에서 살면서 노르망디 풍경을 많이 그렸다. 르아브르 항구나 해안 풍경뿐 아니라 노르망디 公國의 수도였던 르왕의 대성당을 여러 시각에서, 여러 시점에서 그린 것, 지베르니의 저택 정원에 있는 睡蓮(수련)을 그린 것 등이다. 다른 인상파 화가들도 옹플뢰르 등 노르망디의 작은 항구와 마을로 몰려갔다. 이렇게 하여 노르망디의 풍경은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세계인들에게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이런 그림을 보고 노르망디를 찾는 이들도 많다. 그래서 위대한 예술가는 위대한 생산자이다.

 프랑스는 큰 나라이다. 본토는 547000평방킬로미터이고 남태평양 등에 있는 영토까지 포함하면 674843평방킬로미터이다. 서유럽에서 가장 큰 나라이다. 농토가 비옥하여 해외로 나가는 이민자가 많지 않다. 영토가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는 프랑스는 배타적 經濟水域 면적이 11025000평방킬로미터로서 근소한 차이로 미국에 이어 2등이다. 인구는 6535만 명인데 최근 늘고 있다.

 프랑스는 GDP가 세계 5위이고 家口의 총자산으로 치면 유럽에서 1(세계4)이다. 国防予算은 세계에서 5위이고 兵力규모는 유럽연합에서 1등이다. 核爆弾을 300개 보유한 核強国이다. 외교관 숫자가 미국에 이어 두 번째, 保健서비스의 질은 세계1등으로 평가된다(WHO). 서유럽에서 가장 높은 산은 프랑스 샤모니에서 올라가는 몽블랑이다. 4810m.

 노르망디를 비옥하게 만드는 원천은 세느 강이다. 한국인들은 파리에 가서 그 유명한 세느 강을 보고는 강폭이 좁은 데 놀란다. 한강보다 작다고 誤解한다. 세느 강은 부르고뉴 지방의 야산에서 發源, 르아브르-옹페르 항구 사이 하구를 통하여 바다(도버 해협)로 들어간다. 길이는 776km이고 流域면적은 78650평방킬로미터이다. 漢江은 길이가 514km이고 流域 면적은 34402평방킬로미터. 세느 강은 年中 流量의 차이가 거의 없다. 좁지만 깊다. 하류의 유량은 秒당 500입방미터이다. 한강의 팔당댐 아래 평균 流量은 초당 290입방미터. 河口에서 120km 떨어진 르왕까지 해양선이 올라온다. 하구에서 560km 지점까지 배가 다닌다. 파리를 관통하는 세느 강엔 37개의 다리가 걸려 있다. 옹플뢰르와 르아바르 사이를 지나는 세느의 河口엔 한때 세계에서 가장 길었던 斜張橋인 노르망디 大橋가 있다.

www.chogabje.com 2013-08-11 10:08

2013/08/11 18:39 2013/08/11 18:39

노르망디에 정착한 바이킹은 영국과 시실리를 정복, 一流文明을 建設한다.

                                                     趙甲濟
 
 이번 여름, 尙美會 여행단과 함께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나의 趣味 때문이다. 나는 학생 시절부터 草原지대, 징기스칸, 몽골, 기마군단, 匈奴, 투르크(突厥)에 흥미를 느껴 1996년에 モンゴル벨트 취재를 두 달 간 한 적이 있다. 몽골족은 世界史의 支配民族이다. Born to rule, 다른 나라와 민족을 지배하기 위하여 태어난 종족이다. 지배를 당하여 고생한 민족과 나라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세계사를 지배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세계사에서 몽골족과 더불어 지배민족으로 분류될 수 있는 이들은 로마인과 게르만이다. 로마문명이 무너진 5세기 이후 유럽은 게르만족 세상으로 변한다. 고트, 반달, 프랑크, 롬바르드, 부르군디, 앵글로, 색슨 등 게르만의 여러 종족이 유럽을 석권, 王朝를 세우고 지배집단이 되었다. 유럽의 지배층이 5세기를 前後하여 로마인에서 게르만족으로 교체된 이후 지금까지 그런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오늘의 세계는 게르만족 주도이다.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스위스, 네더란드, 스칸디나비아(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 아이슬란드, 호주, 뉴질랜드, 캐나다 등은 게르만족과 그 후예들이 지도층을 형성한 나라이거나 파생하여 만들어진 나라이다. 1류국가 랭킹을 내면 늘 最上位圈에 든다. 미국에선 스칸디나비아 이민들이 많이 사는 도시와 시골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바이킹은 게르만족 중 가장 늦게 文明化, 기독교화 하였다. 어떻게 보면 게르만족의 순수성과 野性을 가장 오래 보존하였던 이들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살던 바이킹이었다.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이 3大 바이킹 국가이다. 이들은 10~11세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다른 게르만족보다는 약500년이 늦었다.
 
  바이킹은 전형적인 지배민족이다. 원정, 약탈, 정복, 통치, 정착, 탐험이 特技다. 이동을 많이 하는 민족일수록 성공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영국, 네덜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아랍상인, 지금은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세계를 싸돌아다닌다. 이동은 사람을 낯설고 위험한 환경에 던져 넣기 때문에 사람을 똑똑하게 만든다. 훈련시킨다. 다른 환경에 적응하기 위하여 조직을 만들고 키우지 않을 수 없다.
 
  이동의 범위가 가장 넓었던 민족은 바이킹 이전엔 흉노, 투르크, 훈족과 같은 유목민족이었다. 이들은 野生에서 생긴 野性의 군사력, 즉 騎馬전술과 활로 文明세계를 흔들었다. 草原으로 이어지고 草原에 이웃한 중국, 중앙아시아, 중동, 유럽이 이들의 진출 목표였다. 로마세계를 무너뜨리는 계기도 4세기 훈족의 유럽 등장이었다. 몽골 고원에 살던 흉노가 서쪽으로 이동하여 훈족이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유럽의 동쪽에 살던 게르만족을 쳤고, 밀린 게르만족은 로마 문명권으로 밀고 들어갔다. 로마제국의 멸망 과정이 이런 연쇄반응으로 촉진된 셈이다.
  
  유목기마민족은 말과 칼로 세계를 정복해 가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제국을 건설한다. 몽골, 투르크, 게르만, 바이킹 같은 지배 민족은 나라를 부수고 나라를 세우는 전문가들이다. 고구려, 신라, 백제도 기마민족이 토착민을 정복하여 세운 국가이다. 고대와 중세에 유목기마민족 계열의 정복왕조가 많이 등장하는데, 18세기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었다.
 
  18세기의 세계를 호령하던 4大 제국은 淸(중국), 무갈제국(인도), 오스만 터키, 그리고 大英제국이었다. 청은 여진족, 무갈제국은 징기스칸의 후예를 자칭하던 우즈벡 출신의 기마민족, 오스만 터키는 오스만족(투르크족의 일파)이 세운 제국이었다. 무갈은 이란어로 몽골이란 뜻이다. 4대 제국 중 세 제국이 유목기마민족 계통이고 영국은 바이킹 계통으로 분류할 수 있다. 바이킹이 프랑스의 노르망디에 정착, 公國을 만들어 힘을 키운 다음 윌리엄 공의 지도하에 영국으로 쳐들어가 앵글로-색슨족 지배층을 一掃하고 대제국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제도와 언어와 성격을 만들었다. 엘리자베스 2세는 정복왕 윌리엄의 32代로 분류되기도 한다. 영국의 국가적 성격, 영국인의 기질은 1066년의 노르만에 의한 영국정복으로 뼈대가 형성되었다.
 
  18세기 4대 제국 중 청, 무갈, 오스만 터키는 말과 활을 主武器로 삼은 육상세력이었다면 대영제국은 배를 잘 모는 해양세력이었다. 19~20세기로 접어들면 육상세력은 退潮하고, 해양세력이 세계사의 주도권을 잡는다. 영국과 미국이다. 영국은 동물의 힘을 기계의 힘으로 바꾼 산업화를 가장 먼저 시작했고, 陸上 기마민족 세력은 산업화가 늦었다. 1840년의 아편전쟁은 영국이 淸을 산업화된 武力의 힘으로 굴복시킨 전쟁인데, 기마민족에 대한 해양세력의 최종승리를 상징한다.
 
  몽골기마민족 계열과 바이킹 계열이 세계사의 2대 지배족인 셈인데, 전쟁과 통치 방식은 달랐지만 그 내용과 본질은 비슷한 점이 많다. 기동성, 개방성, 실용성, 尙武정신, 정직성, 관용 같은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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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이킹과 그들이 프랑스에 정착하여 세운 노르만 公國은 一流국가 제조기였다. 나는 이 점에 흥미를 느낀다. 어떻게 유럽에서 가장 오랫동안 야만상태로 남아 있었던 바이킹이 一流국가, 一流문명, 一流건축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나?
 
  첫째 바이킹은 가장 넓게, 가장 위험하게 싸돌아다닌 사람들이다. 8세기말에서 시작하여 약300년 간 계속되는 바이킹의 대이동 시대 그들의 행동반경은 굉장했다. 고향인 스칸디나비아를 출발한 바이킹 船團은 유럽, 지중해, 중동은 물론이고, 아이슬란드, 그린란드를 거쳐 콜롬버스보다 500년 먼저 北아메리카에 도착한다. 노르웨이-스웨덴 바이킹은 볼가 강을 따라 黑海로 진출하는 과정에서 키에프 公國을 건설했다. 이 공국이 성장하여 오늘날의 러시아가 된다. 러시아라는 단어의 原形인 ‘루스’는 스웨덴 말이다.
  
  바이킹은 동로마제국의 傭兵, 특히 황제 근위대에서 활약하였다. 제1차 십자군의 선봉은 노르만이었다. 바이킹이 이렇게 행동반경이 넓었다는 것은 다양한 문화, 지리, 정치, 인종과 접하면서 적응력이 강해졌다는 것을 뜻한다. 여행은 독서와 같다고 한다. 여행을 많이 하는 것은 책을 많이 읽는 것과 같은데, 책읽기보다는 훨씬 생동하고 써 먹기 좋은 지식과 정보와 경험을 얻는다. 바이킹이야말로 여행을 가장 많이 한 민족이다.
 
  둘째 노르망디 公國의 하이브리드 역할이다. 人種도 동물처럼 純種보다는 雜種이 강하다. 노르망디는 바이킹과 프랑스의 문화적 융합과 인종적 混血의 場이었다. 양쪽의 좋은 점이 노르망디 사람들 속에서 종합되고 발전하였다. 서기 800년 무렵부터 바이킹은 英佛 사이의 도버해협을 통하여 프랑스를 공격하기 시작하였다. 부르고뉴에서 發源, 이 해협으로 들어가는 세느강은 노르망디 평야를 관통한다. 바이킹은 해협에서 세느강을 타고 들어와 이 지역을 약탈하고, 885년엔 파리를 포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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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1년 프랑스 왕은 충성을 서약 받고는 바이킹 부족장에게 노르망디 지역을 公國으로 떼어주었다. 유럽에서 가장 풍요한 평야지대를 차지한 바이킹은, 노르망디, 즉 ‘북쪽에서 온 사람들의 땅’에서 騎士-귀족층으로 변하는데, 기독교로 改宗, 프랑스 문화를 배우고 수용하였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바이킹이다”는 의식을 견지하였다.
 
  바이킹은 좋은 것을 받아들이면 금방 자기 것으로 만드는 특징이 있어 열렬한 기독교 세력이 되었다. 10세기부터 유렵에서 일기 시작한 교회 개혁 운동과 이이 따른 수도원 짓기 붐에 편승했다. 바이킹의 野性과 프랑스의 知性을 겸비한 이들은 정복자 기질을 숨기지 못하고 11세기에 이탈리아 및 영국 원정에 나선다.
 
  오트빌 부족은 이탈리아 남부와 시실리를 정복, 시실리 왕국을 세우고 윌리엄 공은 영국으로 쳐들어가 정복왕조를 건설하였다. 거의 동시에 이뤄진 정복이었다. 이들 노르만 세력이 경영하기 시작한 영국과 시실리 왕국은 11~13세기 유럽에서 가장 풍요하고 역동적인 나라였다. 좋은 제도를 만들고 피정복자를 너그럽게 다스렸고, 기술자를 우대하고 商工을 장려하였다.
 
  노르만 세력은 두 지역에 수많은 城과 성당을 남겼다. 특히 로마네스크 식 건축을 확산시켰다. 노르만의 정복을 계기로 영국은 운명이 바뀐다. 침략만 당하던 약한 나라에서 침략하는 강한 나라로 탈바꿈하면서 비로소 유럽 문명의 本流에 들어온다. 영국에서 노예거래와, 항복한 귀족에 대한 사형을 금지시킨 이는 윌리엄 정복왕이었다. 16세기~17세기엔 노르만 사람들이 신대륙 개척에 앞장선다. 캐나다, 루이지아나, 플로리다 등등. 바이킹과 유럽문명의 혼혈인 노르만이야말로 바이킹보다, 유럽보다 더 우수한 자질을 가진 세력으로 改良된 셈이다.
 
  셋째는 인종적 우수성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스칸디나비아 사람들은 바이킹 시절부터 체격과 체력이 좋고 知能이 우수했다. 성격도 남자답고, 영웅적 삶과 죽음을 동경하였다. 체력-지능-정신력에 더하여 조직력과 배를 만들고 부리는 기술이 뛰어났다. 바이킹과 노르만이 만들거나 큰 영향을 끼친 나라들은 예나 지금이나 一流국가이다. 中世의 시실리 왕국, 영국, 아이슬란드,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스웨덴, 영국계 나라인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이다. 미국에선 스칸디나비아 이민들이 많이 사는 도시와 시골이 살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나는 2010년엔 스칸디나비아, 올해 3월엔 시실리와 나폴리 여행을 통하여 바이킹과 노르만을 취재하였다. 지난 7월12일, 파리로 향하였다. 노르망디가 목표였다. 대한항공 보잉 747 점보는 만원이었다. 몽골 고원을 지나면서부터는 고도를 3만8000m까지 높여 파리 도착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인천공항 출발이 낮 2시라서 줄곧 낮 지대를 통과하는 비행이었다. 비행기를 타면 잠이 오지 않는 나는 책 한 권 분량을 矯正(교정) 보았다.
  
  파리도 만원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바캉스를 즐기려고 바깥으로 나가 시내를 텅 비워주었는데 그 공간을 세계 도처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메웠다. 특히 중국인들이 많았다. 작년엔 8500만 명, 올해는 1억 명의 중국인들이 해외여행을 한다.
 
  마침 7월14일은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이었다. 에펠탑을 중심으로 불꽃놀이를 하는데 구경꾼들이 세느강 주변을 메웠다. 혁명을 가장 소중하게 기념하는 나라인 프랑스는 그야말로 혁명의 나라이다. 1789년 대혁명, 루이 16세 처형, 단두대, 2만 명 처형, 단두대를 만든 사람도 처형, 나폴레옹 전쟁, 왕정복고, 나폴레옹 탈출, 워털루, 1830년 7월 혁명, 1848년 2월 혁명, 나폴레옹 3세 등장, 쿠데타로 황제 등극, 1870년 普佛전쟁 패배, 파리 콤뮌으로 3만 명 피살, 1914년 1차 세계대전으로 젊은이들 300만 명 戰死, 마지노 요새 건설, 左右대립으로 國論분열, 1940년 독일군에 패배, 레지스탕스 운동, 1944년 드골의 파리 입성, 1958년과 1961년 군사반란 등. 대혁명 이후 224년간 프랑스는 전쟁과 평화, 영광과 수치, 혁명과 쿠데타가 오고가는 소란스러운 歷程을 걸어왔다. 정치가 左右대립형이라 내부 갈등은 계급적 증오심으로 폭발, 피를 부르기 쉽게 되어 있었다. 혁명 수출국으로서 프랑스는 러시아의 선배이다. 이런 소란 속에서도 프랑스 사람들은 어떻게 하여 이렇게 화려하고 장대한 문명을 건설할 수 있었는가, 이게 늘 내가 품고 있던 의문이었다.

www.chogabje.com 2013-08-10 10:05 
2013/08/11 18:28 2013/08/11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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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水中排水量1,860トン(海軍が2013年8月4日、公開)
2013/08/07 16:12 2013/08/07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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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全教組追放汎国民運動が大統領に訴えた(2013年8月6日の午後、青瓦台の近くで)

2013/08/07 02:21 2013/08/07 02:21

すべてが予定された手順、今年上半期まで隊列整備と力量蓄積に注力

                                                     金泌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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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上の写真は2013年7月31日現在の民主党のホームページの画面

 南韓内の左傾勢力は、北側の対南扇動の核心スローガンである自主・民主・統一(自民統)に基づいて“在韓米軍の撤退(自主)→南韓に人民民主主義政権創出(民主)→北韓式連邦制共産化統一(統一)”という戦略目標を達成するため様々な戦術を駆使している。

 左傾勢力の革命戦術は、情勢が有利か不利かによって干潮期-沈滞期-高揚期-満潮期の4段階に分けられる。干潮期、つまり、共産革命が不利なときは退却および妥協戦術を使う。状況が少し好転したときは沈滞期で、このときは隊列整備と力量備蓄に努める。

 高揚期に入ると反応を試すように奇襲的な示威を通じて‘全面攻撃’(大規模暴動)の好機を窺う。高揚期の力量の計算で勝算があると判断されれば、満潮期に入って大々的な暴動およびテロを恣行する(引用:韓・グォンフイ、『対南赤化戦略の全貌』、北韓研究所のブログ)。

 左傾勢力はまた、上記の全段階(干潮期-沈滞期-高揚期-満潮期)と並行して様々な‘統一戦線戦術’を駆使する。‘統一戦線戦術’は共産主義者たちが広範な大衆的支持を動員する必要があるか、自分たちの勢力を大きく見えるようにし、強大な共通の敵に立ち向かうなど、当面の目的達成のために敵対的な勢力とも‘一時的’にと連合する戦術を指す。

www.chogabje.com 2013-07-31 17:20

2013/08/01 22:51 2013/08/01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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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年から実戦配備が始まって2016年まで60機を配備予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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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01 11:36 2013/08/01 11:36